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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이야기

상록구 유래

상록구의 구(區)이름 유래

상록구의 명칭은 일제강점기 안산에서 활동한 농촌계몽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인 최용신(崔容信) 선생을 모델로 심훈(沈熏)이 쓴 소설 <상록수常綠樹>에서 따온 것이다. 최용신 선생의 계몽사상과 상록수의 깊은 뜻을 계승·발전시킨다는 뜻으로 2002년 11월 1일 상록구청이 개청되었다.

- 건건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는 반월동 관할이다. -
조선시대에는 광주부(廣州府) 북방면(北方面) 건건리(乾乾里)라 했다가 칙령 제49호에 따라 1906년 9월 24일 안산군(安山郡) 북방면 건건리로 되었으며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거 1914년 3월 1일 건건리가 속한 북방면이 수원군(水原郡)으로 이관되었고, 4월 1일 북방면이 성곶면․월곡면과 통합되어 반월면(半月面)으로 개칭되어 수원군 반월면 건건리가 되었다. 그 후 대통령령 제161호에 따라 1949년 8월 14일 화성군(華城郡) 반월면 건건리로 되었다가 대통령령 제14434호에 의거 1994년 12월 26일 안산시(安山市) 건건동(乾乾洞)이 되었다.
건건동이란 지명은 조선왕조 중엽 한응룡(韓應龍)이라는 사람이 광주(廣州)로 이사하던 날 하루종일 날씨가 건건(乾乾)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며 한응룡이란 사람이 건건리 창말에 처음 터를 잡았는데 땅이 암반지대여서 물이 안 나기 때문에 건건동이라고 했다고 하는 설도 있다. 한편 건(乾)자가 풍수지리상 하늘건자로 쓰기 때문에 위의 설이 틀렸다고 하는 이도 있다.
- 본오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 본오1동, 본오2동, 본오3동이 속해있다 -
조선시대에는 광주부(廣州府) 성곶면(聲串面) 본오리(本五里)와 분오리(分五里)라 했다가,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따라 안산군(安山郡) 성곶면 본오리와 분오리(分五里)로 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의거 수원군(水原郡) 반월면(半月面) 본오리로 개칭되었다. 그 후 1949년 8월 14일 대통령령 제161호에 따라 화성군(華城郡) 반월면 본오리로 되었고, 이어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에 의거 안산시(安山市) 본오동(本五洞)이 되었다.
본오동은 조선 시대에 성곶면의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 일리~사리는 쉽게 마을 명칭이 결정되었으나 배옷(이호동梨湖洞) 주민들과 오목골(선암동仙岩洞) 주민들은 서로 이해가 엇갈려 오리(五里)에서 배옷은 본오리(本五里)로, 오목골은 오리에서 나누어진 분오리(分五里)로 불리게 되었다. 그후 1914년 부군을 통합하면서 분오리를 본오리에 흡수해 본오리로 하였고, 1986년 시제(市制)가 실시되면서 ‘본오동(本五洞)’으로 개칭하였다.
1979년 8월 20일 경기도 반월지구 출장소가 개소된 후 1986년 1월 1일 안산시 승격과 함께 반월동사무소가 개소되어 반월동 관할이 되었다가 1991년 1월 1일 안산시 기구 증설에 따라 본오동으로 분동되었고, 1994년 7월 1일 본오동은 본오1.2동 분동되었으며 1996년 1월 22일 본오2동에서 본오3동이 분동되었다.
- 부곡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도 부곡동이다. -
조선시대에는 안산군(安山郡) 군내면(郡內面) 부곡리(釜谷里)와 신리(新里)였다가, 1912년 2월 5일 부곡리로 통합․변경되었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始興郡)에 통합되었고, 같은 해 4월 1일 군내면이 수암면(秀岩面)에 통합․개칭되어 시흥군 수암면 부곡리가 되었다. 그 후 법률 제3798호에 따라 1986년 1월 1일 안산시(安山市) 부곡동(釜谷洞)이 되었다. 부곡동은 진주유씨 누대의 세거지인데 시랑골·신촌 등 남부지역은 폐동되어 택지 및 시낭운동장·제일컨트리클럽 등이 들어섰고, 개멸·벌터 등 북부지역은 자연취락이 현존하나 영동고속도로가 마을 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 사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 사동, 사이동, 해양동이 속해있다. -
조선시대에는 광주부(廣州府) 성곶면(聲串面) 삼리(三里)와 사리(四里)였다가, 칙령 제98호에 따라 1906년 9월 24일 안산군(安山郡)에 편입되었다. 1912년 2월 5일 사리와 삼리를 통합해 사리로 변경하였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거 1914년 3월 1일 사리가 속한 성곶면이 수원군(水原郡)으로 이관되었고, 곧이어 4월 1일 성곶면이 북방면․월곡면과 함께 반월면(半月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수원군 반월면 사리가 되었다. 그 후 1949년 8월 14일 대통령령 제161호에 따라 화성군(華城郡) 반월면 사리가 되었다. 이어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에 의거 안산시(安山市) 사동(四洞)이 되었다.
사동은 신도시개발 전에는 화성군 양감면 면장보다 사리 이장을 한다고 할 만큼 화성군 관내에서는 이(里) 면적이 제일 컸다고 한다. 사동은 조선시대에는 남양과 안산 지방에서 ‘주다리[珠橋里]’라 칭했고, 사동의 집성 성씨인 양주최씨를 ‘주다리 최씨’라고 불렀다. 사동은 구라와 승지골[承旨谷] 외에는 대부분의 지역이 주택단지·아파트단지·학교(대학교)부지로 조성되었다.
- 사사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는 반월동 관할이다. -
조선시대에는 광주부(廣州府) 월곡면(月谷面) 사사리(沙士里)라 했다가 칙령 제49호에 따라 1906년 9월 24일 안산군(安山郡) 월곡면 사사리가 되었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거 1914년 3월 1일 사사리가 속한 월곡면이 수원군에 이관되었으며 4월 1일 월곡면이 성곶면․북방면과 통합하여 반월면(半月面)으로 개칭되어 수원군 반월면 사사리가 되었다. 해방 후 대통령령 제161호에 따라 1949년 8월 14일 화성군(華城郡) 반월면 사사리로 되었다가 대통령령 제14434호에 의거 1994년 12월 26일 안산시(安山市) 사사동(沙士洞)이 되었다.
사사동(沙士洞)은 조선 말기(1860년경)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며 이 지역에는 반짝이는(아름다운) 모래가 많고,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성포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도 성포동이다. -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군내면 성곶포촌리(聲串浦村里)였다가 조선 말기에 성포리(聲浦里)로 바뀌었다. 1912년 2월 5일 군내면 점성리(占星里)와 성포리를 통합하여 성포리가 되었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始興郡)으로 통합되었고, 4월 1일 군내면이 수암면(秀岩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시흥군 수암면 성포리로 되었다. 그 후 법률 제3798호에 의거 1986년 1월 1일 안산시 성포동이 되면서 옛 점성리 지역은 일동(一洞)으로 분리되어 나갔다. 이곳은 안산군의 어업의 전진기지로, 성곶포(聲串浦)가 있던 곳으로, 만선 귀향하는 어부들의 소리가 컸다 하여 성포리로 불리다가 성포동이 되었다. 성포동의 자연취락은 신도시개발 때 모두 폐동되어 옛 성포리(성머리·독주골)는 예술인아파트·주공고층아파트·삼성홈플러스·시외버스터미널 등으로 변모되었다.
- 수암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는 안산동 관할이다. -
조선시대에는 안산군의 읍치(邑治)가 있던 곳으로 읍내(邑內)라고 불려오다가 총독부 경기도고시 제7호에 따라 1912년 2월 5일 군내면 수암리와 서정리(西亭里)를 통합하여 수암리라 하였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始興郡)에 통합되었고 곧이어 4월 1일에 군내면이 수암면(秀岩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시흥군 수암면 수암리가 되었다. 그 후 법률 제4050호에 의거 1989년 1월 1일 시승격을 하면서 시흥시(始興市) 수암동(秀岩洞)으로 되었다가 대통령령 제14629호에 의거 1995년 4월 20일 안산시(安山市) 수암동이 되었다.
이 마을은 수암봉(秀岩峯) 아래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수암리(동)라고 한 것이다. 안산동행정복지를 비롯해 학교·농협·우체국·파출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 양상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는 월피동 관할이다. -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군내면(郡內面) 양등대리(楊等垈里)라 하였다가 조선 후기에 양상리(楊上里)와 양하리(楊下里)로 분리되었고, 1912년 2월 5일 양상리(楊上里)로 통합․변경되었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에 통합되었고, 곧이어 4월 1일 군내면이 수암면에 통합․개칭되어 시흥군 수암면 양상리가 되었다. 그 후 법률 제3798호에 따라 1986년 1월 1일 안산시 양상동(楊上洞)이 되었다.
양상동은 자연취락이 2개 마을(아랫버대·웃버대)에 지나지 않으며, 신도시개발 이후에도 크게 변모되지 않은 지역으로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이 많은 곳이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는 11기가 있었으나 대부분 파괴되었고, 월피동과 양상동 경계 관모봉 서쪽 능선에는 적석토광묘(積石土壙墓)와 주거지가 있고, 석곡역(石谷驛)은 시흥시 군자동에 있다가 조선 중엽에 버대마을로 이전되었으며 한양대 박물관에 의해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지석(誌石)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월피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도 월피동이다.-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잉화면(仍火面) 월입피(月入陂)라 하였고 한말에 잉화면이 인화면(仁火面)으로 바뀌었다. 1912년 2월 5일 월입피를 월피리(月陂里)로 개칭하였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에 통합되었고, 4월 1일 인화면이 수암면(秀岩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시흥군 수암면 월피리가 되었다. 그 후 법률 제3798호에 따라 1986년 1월 1일 안산시(安山市) 월피동(月陂洞)으로 되었다.
월피(月陂 : 다리피)라는 마을이름의 유래는 마을 앞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만조가 되면 둑이 언월(偃月 활모양의 달, 아직 반달이 되지 못한 초생달) 만큼 남는다는 표암 강세황의 시(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로부터 농토가 비옥할 뿐 아니라 마을 앞으로 안산천이 흐르고 있어 연년세세 풍년이 들어 부자가 많이 살던 곳이다.
- 이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도 이동이다. -
조선시대에는 광주부(廣州府) 성곶면(聲串面) 이리(二里)라 했다가 칙령 제49호에 따라 1906년 9월 24일 안산군(安山郡) 성곶면 이리로 되었으며,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거 1914년 3월 1일 이리가 속한 성곶면이 수원군(水原郡)으로 이관되었고, 곧이어 4월 1일 성곶면이 북방면․월곡면과 함께 반월면(半月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수원군 반월면 이리가 되었다. 그 후 대통령령 제161호에 따라 1949년 8월 15일 화성군(華城郡) 반월면 이리가 되었다. 이어 법률 제3798호에 의거 1986년 1월 1일 안산시 이동(二洞)이 되었다.
- 일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도 일동이다. -
조선시대에는 광주부(廣州府) 성곶면(聲串面) 일리(一里)라 했다가 칙령 제49호에 따라 1906년 9월 24일 안산군(安山郡) 성곶면 일리로 되었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거 1914년 3월 1일 일리가 속한 성곶면이 수원군(水原郡)으로 이관되었고, 곧이어 4월 1일 성곶면이 북방면․월곡면과 함께 반월면(半月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수원군 반월면 일리가 되었다. 그 후 대통령령 제161호에 따라 1949년 8월 15일 화성군(華城郡) 반월면 일리가 되었다. 이어 법률 제3798호에 의거 1986년 1월 1일 안산시(安山市) 일동(一洞)이 되었다. 이때 시흥군 수암면 성포2리(옛 점성리)가 일동에 편입되었다. 일동은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성곶면으로 안산군 군내면(郡內面)과 경계를 이루던 곳이다.
- 장상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는 안산동 관할이다. -
조선시대에는 안산군(安山郡) 군내면(郡內面) 장곡리(獐谷里)였다가 조선 말기 장상리(章上里)와 장하리(章下里)로 분리되었다. 1912년 2월 5일 장상리와 동곡리(東谷里 : 동막골)를 통합하여 장상리(章上里)라 하였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始興郡)에 통합되었고 곧이어 4월 1일 군내면이 수암면(秀岩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시흥군 수암면 장상리로 되었다. 그 후 법률 제4050호에 의거 1989년 1월 1일 시승격을 하면서 시흥시 장상동(章上洞)으로 되었다가 1995년 4월 20일 대통령령 제14629호에 의거 안산시로 편입되어 안산시 장상동이 되었다. 1995년 7월 26일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안산시의회 의결을 거쳐 장상동(獐上洞)으로 한자를 고쳤다.
장상동은 노리울[獐谷]에서 유래하는데, 노리울 뒤에 있는 고깔봉에서 마을에 이르는 산세가 노루의 입처럼 생겨 노리울이라는 설과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골짜기라고 하여 노리울이라고 했는데 노루 장(獐)자로 음차되었다는 설이 있다.
- 장하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는 안산동 관할이다. -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군내면 장곡리(獐谷里)였다가 조선 말기 장상리(章上里)와 장하리(章下里)로 분리되었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始興郡)에 통합되었으며, 곧이어 4월 1일 군내면이 수암면(秀岩面)으로 통합․변경되어, 시흥군 수암면 장하리로 되었다. 1965년 벌말이 장하1리, 원후마을이 장하2리로 분리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의거 시승격을 하면서 시흥시 장하동(章下洞)으로 되었다가, 1995년 4월 20일 대통령령 제14629호에 의거 안산시로 편입되어 안산시 장하동이 되었다. 1995년 7월 26일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안산시의회 의결을 거쳐 장하동(獐下洞)으로 한자를 고쳤다.
- 팔곡이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는 본오2동 관할이다. -
조선시대에는 광주목(廣州牧) 북방면(北方面) 팔곡리(八谷里)였다가, 한말에 팔곡일리(八谷一里)와 팔곡이리(八谷二里)로 분리 되었다. 칙령 제49호에 따라 1906년 9월 24일 북방면이 안산군(安山郡)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북방면이 다시 수원군(水原郡)으로 이관되었고, 곧이어 4월 1일 북방면이 성곶면,․월곡면과 함께 반월면(半月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수원군 반월면 팔곡이리가 되었다. 그 후 대통령령 제161호에 따라 1949년 8월 15일 화성군 반월면 팔곡이리로 되었다가 법률 제3798호에 의거 1986년 1월 1일 안산시(安山市) 팔곡이동(八谷二洞)으로 되었다.
현재 팔곡이동은 행정동 본오1동의 관할로 되어 있다. 수리산 남쪽 기슭 8개의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팔곡동(八谷洞)이라는 동명이 생겨났다. 팔곡동의 여덟 개 골짜기는 능골[陵谷], 궁머리골[宮頭谷], 안골[內谷], 승지골[承旨谷], 절골[寺谷], 곰낼[熊川洞], 선학골[仙鶴谷], 우묵골[井洞] 등을 말한다. 팔곡이동을 팔곡2동이라고 숫자로 쓰면 안된다. 팔곡이동이 법정동 명칭이기 때문이다.
- 팔곡일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으로는 반월동 관할이다. -
조선시대에는 광주부(廣州府) 북방면(北方面) 팔곡리(八谷里)였다가, 한말에 팔곡일리(八谷一里)와 팔곡이리(八谷二里)로 분리되었다. 칙령 제49호에 따라 1906년 9월 24일 북방면이 안산군(安山郡)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북방면이 다시 수원군(水原郡)으로 이관되었고, 곧이어 4월 1일 북방면이 성곶면 ․ 월곡면과 함께 반월면(半月面)으로 통합․개칭되어 수원군 반월면 팔곡일리가 되었다. 그 후 대통령령 제161호에 따라 1949년 8월 14일 화성군 반월면 팔곡일리로 되었다가 대통령령 제14434호에 의거 1994년 12월 26일 안산시 팔곡일동이 되었다.
수리산 남쪽 기슭 8개의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팔곡동(八谷洞)이라는 동명이 생겨났다. 팔곡동의 팔곡은 능골[陵谷], 궁머리골[宮頭谷], 안골[內谷], 승지골[承旨谷], 절골[寺谷], 곰낼[熊川洞], 선학골[仙鶴谷], 우묵골[井洞] 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