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고장, 문화예술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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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연혁

안산시 연혁

고구려
장항구현(獐項口縣)
757년(신라 경덕왕 16)
장구군(獐口郡)으로 승격
940년(고려 태조 23)
안산군(安山郡)으로 개칭
1018년(고려 현종 9)
수주(水州)의 속현(屬縣)
1308년(고려 충렬왕 34)
안산군(安山郡)으로 승격
1914년 3월
안산군 군내면, 인화면, 초산면이 시흥군 수암면으로,
와리면, 대월면, 마유면이 시흥군 군자면으로,
월곡면, 북방면, 성곶면이 수원군 반월면으로 통합
1976년 12월
반월 신도시 건설 결정
1977년 1월
경기도 반월지원사업소 설치
1979년 8월
경기도 반월지구출장소 설치
1986년 1월 1월
안산시 승격(법률 제 3798호)

안산은 원래 고구려의 장항구현(獐項口縣) 또는 고사야홀차현(古斯也忽次縣)인데 신라 경덕왕 때 장구군(獐口郡)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초기에 안산군(安山郡)으로 고쳤고, 현종 9년(1018)에 수주(水州 : 수원)의 속현(屬縣)이 되어 안산현(安山縣)이 되었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문종(文宗)이 탄생한 고을이라 하여 안산군(安山郡)으로 다시 승격되었고 이후 지사(知事)의 다스림을 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 13년(1413)에 전면적인 지방통치 조직이 개편됨에 따라, 8도제의 시행으로 경기도에 속하였고 이후 군수(郡守)의 다스림을 받았다.

안산군(安山郡) 서남쪽 30리 되는 곳에는 초지량영(草芝梁營)이 있었는데, 효종 7년(1656) 이곳 초지진(草芝鎭)을 강화도로 옮겼다.

안산은 조선시대에 연성(蓮城)이라고도 흔히 불리었는데, 이는 세조 9년(1463) 문신이며 농학자인 강희맹(姜希孟)이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연꽃 씨를 가지고 와서 안산의 관곡지(官谷池)에 시험 재배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어 그 뒤부터 안산의 별호를 연성(蓮城)이라 했다고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정종 2년(1400)에 안산김씨인 김정경(金定卿)이 박포의 난을 평정하고 좌명공신에 올라 연성군(蓮城君)에 봉군되었던 점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연성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고종 32년(1895) 23부제가 실시되면서 인천부(仁川府)에 속하였다가 다음해에 도제(道制)가 부활하자 다시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6년에는 광주(廣州)의 성곶면∙북방면∙월곡면이 안산군에 편입되었으나 일제 강점 후 1914년 3월 1일에는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3호 「면의 명칭 및 경계 획정」으로 안산군의 군내면, 인화면, 초산면이 시흥군 수암면(秀岩面)으로, 와리면, 대월면, 마유면이 시흥군 군자면(君子面)으로, 월곡면, 북방면, 성곶면이 수원군 반월면(半月面)으로 각각 통합‧편입됨으로써 고려 초기인 940년부터 1914년까지 975년간 계속 유지되었던 ‘안산’이란 고을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1976년 시흥군의 수암면, 군자면과 화성군의 반월면 일대가 반월신공업도시(半月新工業都市)로 조성되면서 해마다 인구가 증가하여 1986년 1월 1일 시 승격과 함께 안산이란 옛 이름을 되찾아 안산시로 부르게 되었다.

1994년 12월에는 화성군 반월면 일부와 옹진군 대부면 전체가 편입되었고, 1995년 4월에는 시흥시 장상동 · 장하동 · 수암동과 화정동 일부가 편입되어 오늘날의 안산시가 되었다.